카테고리 없음

[스크랩] 처서기(處暑記) 박성룡

이피 제니아 2006. 8. 24. 10:26

 

                           


처서 가까운 아 깊은 밤

천지를 울리던 우레  소리들도 이젠

마치 우리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걷히듯

먼 산맥의 등성이를 넘어가나 보다.


역시 나는 자정을 넘어

이 새벽의 나른한 시간까지는

고단한 꿈길을 참고 견뎌야만

처음으로 가을이 이 땅을 찾아오는

벌레 설레는 소리라도 귀담아 듣게 되나 보다.


어떤 것은 명주실같이 빛나는 시름을,

어떤 것은 재깍재깍 녹슨 가위 소리로,

어떤 것은 또 엷은 거미줄에라도 걸려 파닥거리는 시늉으로

들리게 마련이지만,

그것들은 벌써 어떤 곳에선 깊은 우물을 이루기도 하고

손이 시릴 만큼 차가운 개울물 소리를 이루기도 했다.


처서 가까운 이 깊은 밤

나는 아직은 깨어 있다가

저 우레 소리가 산맥을 넘고, 설레는 벌레 소리가

강으로도, 바다로라도, 다 흐르고 말면

그 맑은 아침에 비로소 감이 들겠다.


세상이 유리잔같이 맑은

그 가을의 아침에 비로소

나는 잠이 들겠다.

 

Let It Be Me - Everly Brothers.

출처 : 오드리햅번
글쓴이 : 오드리헵번 원글보기
메모 : 처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