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양귀비
중국 당나라 현종(玄宗 : 685~762) 때인 719년, 경국지색(傾國之色), 절세가인(絶世佳人)의 상징인 양귀비(楊貴妃)는 태어났다. 본명이 양옥환(楊玉環)인 그녀는 빼어난 미모와 총명함 그리고 가무에 뛰어난 솜씨를 지녀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아 시대의 흐름을 바꾸면서 일세를 풍미하다 3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현종은 조모인 측천무후(則天武后)의 뒤를 이어 당시 권세를 장악하고 있던 안락공주(安樂公主) 태평공주(太平公主) 일파를 타도하고, 28세의 나이에 황제의 자리에 올라 명상들을 등용하여 민생의 안정을 꾀하며 국방을 튼튼히 하고 경제를 충실히 하면서 수십 년의 태평천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노년에 접어들면서 정사(政事)를 등한히 하게되고 도교(道敎)에 빠져 막대한 국고를 소진하였으며, 총애하던 무혜비(武惠妃)마저 죽게되자 마음을 둘 곳 없어 하던 차에, 아들인 수왕(壽王)의 비(妃)가 되어있던 양귀비가 무혜비를 닮고 미모가 수려하여 눈여겨보고 있다가 35세나 연하였던 양귀비와의 역사적인 인연을 만들어가게 된다.
당대의 최고 시인이었던 이백(李白)이 활짝 핀 모란에 비유했을 정도로 절세의 미인이었던 양귀비는 비파 연주솜씨가 뛰어나 현종의 딸인 함의공주 결혼식에 연주자로 참석했다가 현종의 아들인 수왕의 눈에 띠게 되어 양귀비의 나이 17세에 수왕의 비에 오르게 된다. 수왕은 현종과 무혜비 사이에서 태어난 현종의 18번째 왕자였는데, 양귀비는 평소 수왕에 대한 사랑보다는 현실의 권세에 더 관심을 두고 있기도 해서 현종의 멈출 줄 모르는 탐욕과 양귀비의 그것은 훗날의 비극을 예고하고 있기도 했다.
양귀비의 어여쁜 자태에 마음을 빼앗긴 현종은 자신의 측근인 환관과 이를 의논하였고, 황제의 마음을 파악한 환관은 양귀비의 두 몸종을 매수하여 양귀비의 마음을 돌리도록 하였다. 결국 황제의 권세를 선택한 양귀비는 수왕을 떠나기로 결심하였고, 현종은 며느리의 신분인 양귀비와 결합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양귀비의 뜻이라 하며 양귀비 나이 22세에 먼저 출가시켜 여도사(女道士)로 만들어 남궁에 살게 하면서 세인들의 눈을 피해 결합하다, 양귀비 나이 27세 때에 궁궐로 불러들여 정식으로 자신의 귀비(貴妃)로 책봉하게 된다. 태진(楊太眞)이란 호는 바로 양귀비가 여도사 생활을 할 때 현종이 내린 것이고 양귀비가 거처하던 남궁을 태진궁이라 부르게 하였다.
양귀비와 꿀맛 같은 시간을 보내며 세월 가는 줄 모르던 현종은 온천수가 솟아 나오는 곳에 양귀비를 위한 화청궁(華淸宮)을 지어주고 겨울철마다 그곳에 같이 머무르며 함께 목욕도 하며 해가 하늘에 높이 솟아올라도 떨어질 줄 모르고 깊은 사랑의 늪에 빠져 들어가게 된다. 일찍 부모를 여윈 양귀비는 양(楊)씨 가문의 양녀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양귀비의 환심을 사려한 현종은 양귀비의 친척들을 차례차례 관직에 들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죽은 아버지는 물론 오빠들에게도 관직을 내리고 세 언니들도 각각 한국부인, 괴국부인, 진국부인에 봉해 자신의 옆에 머무르게 하였다. 특히 양귀비의 양오빠인 양소에게는 신임을 더 두어 양국충(楊國忠)이라는 이름까지 내리고 후에 이림보가 실각하자 재상에 오르게 하는 등, 이미 정치에서 멀어진 현종은 황후의 위세를 휘두르게 된 양귀비에 푹 빠져 국사를 그르치며 당 왕조를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하며 후에 안록산의 난인 '안사의 난'이 발생하는 직접적 원인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렇듯 당시 거대한 중국 당나라 왕조를 작은 손에 거머쥐며 절세가인의 전설적 인물로 알려져 온 양귀비가 지금의 날씬한 팔등신 미인형이 아닌 풍만한 몸체를 지녔으나 총명하게 넘치는 재주와 애교 등으로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다. 양귀비는 단단한 껍질 속에 흰색의 말랑말랑한 과육이 있는 단맛과 신맛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리치라는 과일을 즐겨먹었다고 하는데, 현종은 양귀비가 좋아하는 이 과일을 신선하게 공급하기 위해 원산지인 중국 남부에서 수도인 서안까지 나무 째 옮기게 하였다고도 한다.
이와 같이 모든 호사를 누리며 세상의 권세를 한 손에 주무르던 양귀비도 한 왕조의 운명을 시들게 하고 결국엔 안사의 난에 휩쓸리면서 비극적 종말을 고하게 되는데...
어제는 늦은 밤에 큰 아이가 엄마와 운동을 다녀오면서 꽃 한 송이를 손에 들고 다가오며 말했습니다.
"아빠,
호수공원에 가니까 양귀비를 여기저기 심어놨는데 꽃이 다 피었어요. 아빠, 거기 가보세요."
눈에 들어오는 꽃이면 언제든지 사진을 찍고 주변에 가까이 있는 꽃들은 매일매일 자라는 과정을 사진에 담는 제
아빠의 취미를 생각해주며 마치 대단한 것을 발견한 듯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보며 속으로 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아이의 성의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아이가 알려준 곳을 찾아 잠을 포기하고 나서서 찍어온 것입니다. 간간이 가느다란 빗줄기가 내리기도 하고, 가느다란 허리와 다채로운 색을 입힌 비단처럼 얇은 꽃잎이 불어오는 바람에 힘없이 흔들려 마음만 바빠졌던 것 같습니다.
양귀비꽃은 약 70여종이 있는데 아래의 것들은 마약 성분이 없는 관상용 꽃들입니다.
꽃양귀비 - 일명 우미인초, 개양귀비
돌아서지 않는 발길을 옮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양귀비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던 오늘 하루는 정말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